성 논란은 권력 싸움인가

입력 2007. 3. 28. 09:50 수정 2007. 3. 2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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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김헌식 문화평론가]영화 <폭로>에서 직장 상사인 데미 무어는 마이클 더글라스를 성희롱하고, 그것을 약점 잡아서 자신의 뜻대로 요리해 버린다. 데미 무어는 자신을 성희롱했다며, 마이클 더글라스를 고소하는데 이 때문에 마이클 더글라스는 회사에서 쫓겨난다. 이렇게 성희롱 사건을 만들어내 쫓아낸 이유는 막대한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이때 성은 단순히 성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혹은 또 다른 목적을 위해 조작된다. 이 영화의 공헌점은 따로 있었다. 성희롱과 폭행 문제에서 남자가 항상 가해자인가라는 화두의 제기였다.

얼마 전 한 무속인이 자신을 서정범 경희대 교수가 성폭행했다며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자 총여학생회는 정액의 DNA가 일치하고 녹취록과 상해진단서등 명확한 증거가 있다며 학교 측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학교 측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서정범 교수를 직위해제 했다. 평생 동안 한국말과 문화, 특히 천대받았던 무속을 학문의 경지로 올린 노학자의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최근 검찰은 무속인의 고소내용이 허위라고 판단해 서교수를 무혐의 처리했다. 무속인의 녹취록은 철저히 짜집기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많은 관련 사고가 있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조작된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오히려 무고죄로 무속인을 고발했다. 그 무속인은 서 교수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이런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희롱과 성폭행에서 가해자는 대개 남성으로 인식된다. 남성은 가해자, 여성은 피해자라는 도식이 편견수준으로 각인되어 있다. 특히,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남성은 강자가 되고, 이에 당하는 여자는 약자가 된다. 여론은 사건의 본질에 관계없이 당했다는 여성에게 동정적으로 쏠리게 된다. 많은 사회단체들은 약자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때 가해자로 몰린 남성은 치명적인 명예훼손을 당하거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남성이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인사일수록 사태는 치명적이 된다. 사실에 관계없이 이를 두려워하는 남성은 고소나 고소 위협을 하는 여성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정말 남성이 가해자라면 자신의 행동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셈이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무죄로 확정된 개그맨 주병진 씨나 권영찬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공인인 남성에게 성폭행범이라는 딱지는 치명적이고 삶 자체의 궤멸이다. 이 때문에 무죄가 확정되었어도 그들의 명예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주병진 씨는 자살을 생각했다고 한다.

흔히 부도덕한 인물에 대해서는 어떠한 형태의 가혹한 행위도 할 수 있다는 편견이 작동한다. 도덕적 강자의 독선 현상이다. 이때 옳은 일을 하겠다는 도적적 윤리적 동기에 따라 행동하다가 오히려 범죄인이 되는 확신범의 오류에 빠져버린다. 실제로는 약자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마는 것이다. 이번에 서정범 교수의 사례에 대응한 여학생회의 대응이 그러했다.

서정범 교수에 대한 무죄가 밝혀지면서 경희대 총여학생회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비판의 내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김 원씨의 지적대로 총여학생회는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여학생회는 물론 학교 당국도 신중하지 못했다. 다만, 선한 사람들의 동기를 이용하는 행태에 대해서 더 비판해야 한다. 요컨대, 약자에 대한 보호 심리를 역이용하는 행태가 그렇다.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이 매우 강해지고 있다. 배타적이고 독선적이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정신 자체를 폄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을 역이용하는 방식과 이 방식을 이용하는 이들이 더 문제일 것이다. 여성의 권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선한 동기를 악용하여 언론 플레이 등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채우려고 하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아직도 수많은 성희롱과 성폭행은 남성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묻힐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영화 <폭로>같이 여성 직장 상사보다 남성 상사가 자행하는 일이 더 많음은 물론이다. 이런 실제 성권력 역학의 호도가 또 하나의 성 권력 역학이 될 수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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