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어탕에 빠져 새롭게 태어나다

2005. 8. 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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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 입맛 없을 땐 어탕수제비 한 그릇 드세요
ⓒ2005 이종찬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소양강 처녀' 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 김태희 노래

그 집에 가면 피로와 숙취에 시달리는 속을 후련하게 씻어 내리는 어탕수제비가 있다. 그 집에 가면 어탕수제비의 쫄깃한 맛에 포옥 빠진, 소양강 처녀를 닮은 창원 처녀들이 어서 어탕수제비가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 집에 가면 소양강에서 시집 온 민물고기들, 그 민물고기들이 쑤욱 쑥 낳은 어탕수제비가 손님들의 이마에 땀방울을 송송송 맺히게 만든다.

그 집에 가서 어탕수제비 한 그릇 먹고 있으면 여름 내내 더부룩했던 속이 금세 확 뚫리면서 '소양강 처녀'라는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맵싸하고 시원한 어탕에 빠진 쫄깃한 수제비를 곶감 빼먹듯이 하나둘 건져먹다가 시원한 어탕국물을 후루룩 들이키면 세상사 시름이 모두 사라진다. 게다가 소주 한 잔 곁들이면 세상 부러울 게 없어진다.

▲ 창원에서 이름 난 어탕전문점 '소양강어탕뚝배기'
ⓒ2005 이종찬
▲ 밑반찬으로 비름나물, 땅콩조림, 김치, 마늘조림, 풋고추 등이 나온다
ⓒ2005 이종찬

지난 13일(토) 12시쯤, 나의 선배이자 말벗, 술벗이기도 한 오길석(57) 선생과 함께 찾은 창원 윤병원 사잇길에 있는 '소양강 어탕 뚝배기'. 춘천과 함께 우리 나라에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창원에서 어탕집 하면 금세 떠오르는 '소양강 어탕 뚝배기'는 20년 된 어머니 손맛을 자랑하는 어탕전문점이다.

"여러 가지 민물고기를 넣고 끓인 어탕에 밥을 말아먹거나 국수를 말아먹어도 맛이 아주 좋지만 저는 수제비만 고집해예. 어탕에는 뭐니뭐니해도 수제비가 궁합이 딱 맞지예. 제가 마산에서 20여 년 동안 어탕을 끓이면서 손님들에게 밥도 말아먹게 하고, 국수도 말아먹게 해보았지만 손님들 대부분이 어탕에는 수제비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그랬거든예."

얼핏 노랫말에 나오는 소양강 처녀의 까아만 눈빛을 떠올리게 하는 이 집 주인 이영순(50)씨는 어탕이야말로 개고기나 닭고기를 뛰어넘는 여름철 대표적 보양식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게다가 어탕에 손으로 직접 뜯어 넣은 쫄깃한 수제비는 그냥 수제비가 아니라 민물고기의 영양가가 쏘옥 배인 보약덩어리라고 귀띔한다.

30여 평 남짓한 식당. 널찍하고도 바닥에서 반들반들 빛이 나는 깨끗한 실내. 식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오길석 선생이 소주를 시키며 "나도 어탕으로 유명한 산청이나 거창에서 파는 어탕이나 어탕국수를 몇 번 먹어보았는데 이 집 어탕수제비의 기막힌 맛에 비하면 별 거 아니더라구"라며 은근히 이씨의 말을 거든다.

하지만 백 번 말로만 들으면 무얼 하겠는가.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직접 먹어보아야 그 음식의 참맛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어탕수제비(6000원)를 시켜놓고 마악 깡소주 한 잔을 홀짝거리고 있을 때 이씨가 밑반찬 서너 가지를 내오며 쌩긋 웃는다. 우선 어탕수제비가 나올 때까지 이 밑반찬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으라는 눈빛이다.

▲ 들기름에 잘 버무린 독특한 맛의 비름나물
ⓒ2005 이종찬

근데 처음 보는 파아란 나물이 하나 있다. 산나물인가? 이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때 오길석 선생이 그 파아란 나물을 집어 맛을 보더니 대뜸 "이건 비름나물"이라고 한다. 그래. 얼마 만에 먹어보는 비름나물인가. 어릴 때 내 어머니께서도 비름나물을 들기름에 버무려 참 맛있게 만드셨다. 근데 이 집 비름나물도 그 맛과 꼬옥 같다.

그렇게 소주를 홀짝거리고 있을 때, 이씨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탕수제비 두 그릇을 상 위에 올린다. 여러 가지 채소가 엉긴 붉으죽죽한 어탕에 포옥 빠져 맵싸하면서도 구수한 내음을 풍기고 있는 수제비. 그 수제비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입에 절로 침이 가득 고이면서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송 맺히는 듯하다.

"맛있게 드이소. 오늘 어탕수제비는 다른 때보다 국물이 훨씬 더 시원할 낍니더. 꺽지하고 쏘가리가 좀 많이 들어갔거든예. 그라고 드시다가 국물이 더 드시고 싶으모 언제든지 말씀 하이소. 뭐니뭐니 해도 수제비와 어우러진 어탕은 국물맛이 일품이지예."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어탕수제비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자 맵싸하면서도 시원한 국물맛이 혀끝과 입천장을 톡톡 쏜다. 붉으죽죽한 어탕수제비 국물을 잇달아 몇 숟가락 떠먹자 그동안 지긋지긋한 무더위와 고된 세상사, 오랜 피로와 묵은 숙취에 꽉 막혔던 속이 한꺼번에 후련하게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어탕수제비 국물과 함께 건져먹는 쫀득한 수제비의 맛 또한 기막히다. 정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르는 그 맛이라고나 해야 할까.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고, 소주 한 병과 어탕수제비 한 그릇이 금세 다 비워진다. 마지막 남은 어탕수제비 국물을 마저 후루룩 들이키자 그동안 쓰렸던 속이 후련해지면서 편안해진다.

▲ 이 집 어탕수제비는 시원하고 얼큰한 맛이 특징이다
ⓒ2005 이종찬
▲ 손으로 직접 밀가루를 반죽하여 손으로 뜯어넣은 수제비의 맛은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한다
ⓒ2005 이종찬

"맛이 어때예?""어탕국수보다 훨씬 더 색다른 맛이 나네요.""더운 여름철, 입맛 없을 때 어탕수제비 한 그릇 먹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게 없지예.""이 어탕수제비가 보신탕은 아예 저리 가라 하는구먼."

마산에서 20여 년 동안 어탕만 끓이다가 작년에 창원으로 옮겼다는 이씨. 이씨의 어탕수제비에 대한 자부심은 고집스러울 정도다. 간혹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이 어탕국물에 국수나 밥을 말아먹을 수는 없느냐는 물음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지난 20여 년 동안 쌓아온 손맛이 담긴 어탕수제비에 왜 흠집을 내려 하느냐는 투다.

이씨가 만드는 어탕수제비의 재료는 티 없이 맑은 소양강과 충주호에서 잡히는 싱싱한 민물고기다. 미꾸라지와 메기, 붕어, 피리, 꺽지, 쏘가리, 잉어 등 10여 가지. 이씨는 이 10여 가지의 민물고기를 소금물이 담긴 그릇에 3~4시간 담아 진흙을 토하게 한 뒤 산 채로 커다란 가마솥에 포옥 삶는다. 이어 잘 삶긴 민물고기를 체에 걸러 살코기는 받아내고 뼈를 추려내 걸쭉한 어탕 국물을 만든다.

이씨는 그렇게 만든 어탕 국물을 뚝배기에 나눠 담은 뒤 풋배추, 숙주, 부추, 고사리, 된장, 집간장, 깻잎, 붉은고추, 매운고추, 마늘 등을 집어넣고 손으로 직접 반죽한 수제비를 손으로 직접 뜯어 넣는다. 그리고 잘 끓고 있는 어탕수제비에 제피와 방아잎을 올려 비름나물과 오이지, 땅콩조림, 마늘조림, 멸치조림, 김치, 풋고추, 된장과 함께 상에 내면 끝.

▲ 여름철 몸보신, 어탕수제비로 마무리하세요
ⓒ2005 이종찬

"저희 집 어탕수제비의 독특하고도 깔끔한 맛은 집에서 제가 손으로 직접 담근 짭조롬한 간장맛과 구수한 된장맛에 있어예. 가게에서 파는 간장이나 된장을 넣으면 그런 감칠맛이 안 나예. 아마 그래서 저희 집에서 어탕수제비를 먹어본 사람들이 '어머니의 손맛이 나는 집'이라고 그러는가 봐예."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창원-창원역-윤병원-소양강어탕뚝배기(055-252-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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