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첫 인간문화재 정광수씨 별세

2003. 11. 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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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동편제 고봉 ‘하늘무대로 떠나다’판소리계의 최고 어른으로 존경받았던 동편제의 큰 봉우리 정광수씨가 2일 밤11시25분 노환으로 필동 중앙대 부속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4.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예능보유자인 정씨는 1909년 전남 나주공산면 복용리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조부가 국창 정창업이었다. 그는 열여섯살무렵 대명창 김창환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20살에는 집을 떠나 전라도 장흥과순천, 남원을 돌며 소리를 익혔다. 특히 28살에는 순천에서 동편제의 명창유성준을 만난 뒤, 진주 함양을 돌며 그에게서 <수궁가>와 <적벽가>를 배웠다.

그가 익혔던 동편제는 섬진강을 기준해서 동쪽 지역의 소리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소리를 목으로 모아서 내기 때문에 풍부한 성량을 필요로 한다. 그는 이후정응민한테 <심청가>를, 이동백한테 <적벽가> 중 삼고초려 대목을 배웠다.

일제 시기 대동가극단과 동일창극단에서 창극 운동에 참여한 그는 해방 이후광주에 거주하면서 삼남국악원 등을 창설해 제자 양성에 주력했으며 1964년<춘향가>로 첫 판소리 인간문화재가 됐다. 83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았고86년에는 판소리 다섯 바탕의 이론과 실제를 담은 <전통문화 오가사집>이란 책도펴냈다. 나이 들어서도 무대를 고집했던 그는 여든살 때 창극 <홍범도 장군>에서소리를 했고, 여든둘에는 <수궁가> 완창 음반을 냈다. 지난해에는 명창 안숙선씨등이 이사로 참여해, 그의 아호를 딴 ‘양암 원형 판소리 보존 연구원’을만들었다. 지난달 29일에도 공연이 예정됐으나 건강악화로 딸인 정의진씨가 대신무대에 올랐다.

평생 판소리 다섯마당을 불러 온 그에게 판소리는 사서삼경이나 윤리 교과서의다른 이름이었다. 형제의 우의와 화목(흥보가), 붕우유신(적벽가), 효(심청가),충과 신의(수궁가), 열녀(춘향가)의 정신을 판소리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그에겐 큰 자부심이었다. 변강쇠타령이나 꿩타령 같은 노래에 손을 저은 것도 이런맥락에서다. 그는 또 판소리의 ‘판’이 도박판이나 노름판을 떠오르게 한다면서판소리 대신 ‘창’이나 ‘창악’이란 단어를 쓰자고 주장했다.

그의 제자이자 국립창극단 단원인 박성환씨는 “선생님은 조선후기 5명창한테직접 판소리를 전수받은 유일한 생존 국악인이었다”면서 “전통적인 판소리의어법을 그대로 보유한 데다 굉장히 웅장하고 통이 큰 소리를 구사해 판소리계의마지막 남은 거목으로 추앙받았다”고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은석씨 등 1남2녀. 장례식은 5일 오전 10시이며 대학로에서 영결식을 치른다. 빈소는 강남성모병원. (02)590-2697.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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